시 세상/시를 위하여 (시인들의 좋은 시)

대낮,망사커튼을 친 거실에서/ 황학주

이삐김밝은 2012. 3. 7. 12:28

 

 

대낮, 망사커튼을 친 거실에서

 

                                              - 황학주

 

 

 

 나란히 누워 있다

 뒤치는 구름은 가끔 약하게 코를 곤다

 

 그 곱슬머리 한 가닥을

 푸른 이불깃에서 떼어내 망사커튼에 비쳐본다

 우리의 거리를 잴 수 있는 은밀의 머리칼은 젖어 있고

 

 한 사람이 평생 한 사람으로 흔들렸던 것을

 다 기록해 뒀다는 듯

 곱슬머리 구불거리며 흘러가는 구름

 

 듣자니

 혼자의 외로움으로는 외로움이나 사랑을 다 채울 수 없어

 내 모서리는 당신의 모서리로 휘는 법이랬다

 모서리끼리 이어진 첫 이음매에서

 전기가 울고

 

망사커튼이 여러 번 접히며 흔들린다

 지금 당신의 머리칼은 너울거린다

 잇는다는 것이 이런 거라는 듯

 꿈을 꾸는 외로움 둘이서 한 줄로 늘어진다

 

 거실에 낸 우리의 샛길, 국수나무 꽃 근처에서

 근원의 머리칼을 쥐고 구름이 흰 국수 마는 것 본다

 

 

 

시집『某月某日의 별자리』지혜 2012년

 

 

 

 

 - 1954년 전남 광주 출생. 세종대 영문과, 우석대 국문학 박사

   시집<사람><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갈 수 없는 쓸쓸함>

   <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너무나 얇은 생의 담요>

   <루시><저녁의 연인들><노랑꼬리 연> 등

   서울문학대상, 서정시학작품상, 문학청춘작품상, 애지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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