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망사커튼을 친 거실에서
- 황학주
나란히 누워 있다
뒤치는 구름은 가끔 약하게 코를 곤다
그 곱슬머리 한 가닥을
푸른 이불깃에서 떼어내 망사커튼에 비쳐본다
우리의 거리를 잴 수 있는 은밀의 머리칼은 젖어 있고
한 사람이 평생 한 사람으로 흔들렸던 것을
다 기록해 뒀다는 듯
곱슬머리 구불거리며 흘러가는 구름
듣자니
혼자의 외로움으로는 외로움이나 사랑을 다 채울 수 없어
내 모서리는 당신의 모서리로 휘는 법이랬다
모서리끼리 이어진 첫 이음매에서
전기가 울고
망사커튼이 여러 번 접히며 흔들린다
지금 당신의 머리칼은 너울거린다
잇는다는 것이 이런 거라는 듯
꿈을 꾸는 외로움 둘이서 한 줄로 늘어진다
거실에 낸 우리의 샛길, 국수나무 꽃 근처에서
근원의 머리칼을 쥐고 구름이 흰 국수 마는 것 본다
시집『某月某日의 별자리』지혜 2012년
- 1954년 전남 광주 출생. 세종대 영문과, 우석대 국문학 박사
시집<사람><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갈 수 없는 쓸쓸함>
<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너무나 얇은 생의 담요>
<루시><저녁의 연인들><노랑꼬리 연> 등
서울문학대상, 서정시학작품상, 문학청춘작품상, 애지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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