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시를 위하여 (시인들의 좋은 시)

이 저녁에- 박형준

이삐김밝은 2012. 2. 28. 11:31

 

 

 

이 저녁에

           

                   박형준

 

황혼이여, ̄  저녁 하늘의 수술 자국이여, ̄꿈이 태어나는 居여,

이 저녁에 또 하나 별빛이 통증처럼 뻗어나온다

나는 말하지 않으련다, 아물지 않는 상처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한없이 느릿느릿한 걸음걸이가

향기를 안으로 익혀 포도송이로 꽉찬 포도나무밭이,

밀짚 다발 훈훈한 헛간이,

 

태양이 자박자박 걸어들어간 숲속에 난 사잇길로

농부가 걸어나온다 맑은 혓바닥 같은 이슬이 맺힌

나뭇잎 사이로, 기적처럼

소방울 소리가 남아 한참 울리고 그때마다

상처받는 사물들 붉은 속살이 하늘에 가득 돋아오른다

 

밥 타는 냄새 속에

둥글게 모여앉아 기다리는 家族들,

굴뚝에 오르는 연기를 따라가면

밥상에 차려져 있는 달

먼 집, 대답 없는 날들이 대문이 빼곰 열린 마당

서늘한 우물에 어지럽게 떠 있다

                                                 2010, 문학과지성.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