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저녁에
박형준
황혼이여, ̄ 저녁 하늘의 수술 자국이여, ̄꿈이 태어나는 居所여,
이 저녁에 또 하나 별빛이 통증처럼 뻗어나온다
나는 말하지 않으련다, 아물지 않는 상처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한없이 느릿느릿한 걸음걸이가
향기를 안으로 익혀 포도송이로 꽉찬 포도나무밭이,
밀짚 다발 훈훈한 헛간이,
태양이 자박자박 걸어들어간 숲속에 난 사잇길로
농부가 걸어나온다 맑은 혓바닥 같은 이슬이 맺힌
나뭇잎 사이로, 기적처럼
소방울 소리가 남아 한참 울리고 그때마다
상처받는 사물들 붉은 속살이 하늘에 가득 돋아오른다
밥 타는 냄새 속에
둥글게 모여앉아 기다리는 家族들,
굴뚝에 오르는 연기를 따라가면
밥상에 차려져 있는 달
먼 집, 대답 없는 날들이 대문이 빼곰 열린 마당
서늘한 우물에 어지럽게 떠 있다
2010, 문학과지성.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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