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세상으로 띄워 보내는 말 (신작시)

그늘/ 김밝은

이삐김밝은 2015. 9. 7. 21:41

 

           

 

 그늘

 

집 한 채

바람속에서 주저앉고 있다

쨍그랑거리거나 팔랑거리던 목소리들도 부서져 함께 주저앉고 있다

 

날아다니던 소문의 날개를 꺾어 잡아오던

가벼운 발걸음은

빛바랜 벽지에 짠한 기억으로 묻어있는지

희미해진 손짓들이

녹슨 문고리에서 허둥거리고

 

무너져 내리고 있는 사철나무 모가지 너머

트롯트가락이 구겨져 있는 막소주병과

30도의 독한 마음을 발효시키다

가슴 터져버린 항아리가 뒹굴고 있다

 

툇마루에 유서처럼 써놓은 이름이

안간힘으로 버티다 달싹이는 입을 다물자

세월에 묻은 앙금을 털어내듯

한 무리 차가운 바람이 인다

 

멈칫거리던 햇살 한 가닥마저 떠나버린

깊고 무거운 마당을 지나

탈색된 시간을 닫고 있는 자물쇠

 

철커덕 거리는 소리

 

 

2015 창작 21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