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세상으로 띄워 보내는 말 (신작시)

슬픈 빨강이 된 고양이가 나를 바라보는 오후

이삐김밝은 2015. 7. 5. 00:20

 

 

 

 

슬픈 빨강이 된 고양이가 나를 바라보는 오후

 

 

생각들이 혓바닥을 길게 내밀고 늘어진 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꼬리를 빼앗긴

고양이 한 마리가 길을 헤매고 있다

 

어스름 저녁이 몰고 오는 비릿한 냄새가 얹어진

얼룩진 빨강이 꼬리의 흔적처럼 흔들리고 있다

 

오래전,

할머니는 낯선 빨강을 보며 울먹이는 내게

무명천을 곱게 잘라 건네주었지만

원죄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울의 색이 되었던 빨강이

고양이 엉덩이에서 되살아나온다

 

문득 스스로 제 꼬리를 잘라버린 이름들이 허공에 걸린다

 

뜨거운 손을 갖고 있지 못한

나는, 슬프게 돌아온 빨강을 눈으로만 만지작거리며

눈물이 가득한 심장을 애써 떠올려본다

 

기억을 붙잡고 있는 어느 시간의

핑크빛이야기 한 소절로

고양이의 꼬리를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

 

울지 않으려 애쓰는 고양이가 오래도록 나를 바라보는

어느 오후다

 

 

다층 2015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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