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생각
김밝은
시간이 빠르게 늙어가고,
새들은 느린 풍경으로 지나갔습니다
하늘상여를 옮기며 가는 새들이
생각 안으로 스며들던
겨울 강의 하루를 만나고 온 후
눈물을 숨겨둔 거울 속 얼굴을 바라보며
가시가 박혀있는 밥을 삼키곤 했어요
속수무책 눈이 내리거나
깨진 별들이 머리위로 떨어지는 날에는
오래 만지작거려 꼬깃꼬깃해진 말들을
하늘이 가지런히 펴 내려놓기도 하겠지요
제 몸에 마두금을 걸고
바람의 연주를 받아들이는 흰 낙타처럼
비명을 참아내던 마음이 자유로워지면
내가 주었던 상처들로
어딘가 새겨있을지도 모를 비문秘文의 흔적들을
문 닫아건 저 강에서 찾아낼 수도 있을까요
쓱쓱, 연민을 껴안고 있는 강을 문지를 때 마다
내 이름이 조금씩 지워져가고 있어요
2015 창작 21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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