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세상으로 띄워 보내는 말 (신작시)

사막으로 가는 문

이삐김밝은 2015. 6. 14. 06:30

 

 

사막으로 가는 문 / 김밝은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노을과 나란히

보리수나무 그 끝으로 난 문을 열면

해를 가장 먼저 몸에 새겨 넣는 자이살메르

꿈꾸는 성이 있다

 

나를 바라봐주지 않아 모래알 같은 눈물 차오르게도 하는,

오르페우스가 수금을 타는 그곳에선

갠지스강을 지나온 고요한 생의 냄새가 난다

 

별 뜨는 사막의 언저리

붉은 터번을 두른 순례자의 노랫소리가 들리고

낙타 한 마리 목숨처럼 길을 내며 걸어갈 때

내 몸에도 조금씩 모래무늬가 새겨질 것이다

 

호박琥珀빛으로 물든 모래가

오래된 제 몸을 부비며 엷어져가는 기억을 되새기는 소리에

한때 뜨거운 손을 잡았던 얼굴들이 신기루처럼 다가오는,

 

보리수나무 그 끝으로 난 문을 열면

별들이 어린왕자를 데려다 놓고 기다릴

 

자이살메르, 꿈꾸는 사막이 있다

 

불교문예, 2015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