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세상으로 띄워 보내는 말 (신작시)

오래된 약속을 꺼내다-부용의 묘/김밝은

이삐김밝은 2017. 7. 16. 08:15






오래된 약속을 꺼내다

부용의 묘

 

김밝은


 

산이 제 그림자를 껴안고 쓸쓸함을 견디는 동안

울음소리마저 묶었던 시절들을 끌어당겨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얼굴을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수많은 표정의 계절들이

제 발끝을 만지작거리다 가기도 하고

산까치도 찾아오지 않는 날에는

고요로 따른 술 한 잔을 누군가 건네 오기도 했습니다


모란꽃 그늘 아래 그림을 그리던 풍경소리가

그대 목소리처럼 올라오는 날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일 때에 건네지 못했던 말들이

하염없이 밀려들어도

생각은 거기 있고 몸은 여기에 있습니다*


참 좋다며 치맛자락에 그대가 지어주었던 집 한 채,

대문높이 등롱燈籠을 걸고 이제 제 이름을 올려두어도 될까요


자귀꽃, 꽃잠으로 빗장을 걸 때

눈물로도 웃던 사람

있었다고


 

* 부용의 보탑시 부용상사곡중에서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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