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약속을 꺼내다
-부용의 묘
김밝은
산이 제 그림자를 껴안고 쓸쓸함을 견디는 동안
울음소리마저 묶었던 시절들을 끌어당겨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얼굴을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수많은 표정의 계절들이
제 발끝을 만지작거리다 가기도 하고
산까치도 찾아오지 않는 날에는
고요로 따른 술 한 잔을 누군가 건네 오기도 했습니다
모란꽃 그늘 아래 그림을 그리던 풍경소리가
그대 목소리처럼 올라오는 날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일 때에 건네지 못했던 말들이
하염없이 밀려들어도
생각은 거기 있고 몸은 여기에 있습니다*
참 좋다며 치맛자락에 그대가 지어주었던 집 한 채,
대문높이 등롱燈籠을 걸고 이제 제 이름을 올려두어도 될까요
자귀꽃, 꽃잠으로 빗장을 걸 때
눈물로도 웃던 사람
있었다고
* 부용의 보탑시 「부용상사곡」 중에서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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