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시를 위하여 (시인들의 좋은 시)

나무 아래에서- 신영배

이삐김밝은 2015. 3. 11. 14:05

 

                                            <공광규시인 작품>

 

 

나무아래에서

                                                                       신영배

봄엔 숨이 붙은 이파리와 살아봐야지

 

 

여름엔 너를 만나고

귀가 먼 백지와 살아보았네

말은 들리지 않고

떠오른 달 속에서 물이 날고 있었네

바람 소리를 모른 채 바람을 따라가는 귀가 있었지

나무 아래에서 너는 시집과 함께 흔들리고 있어

낯선 거리의 저녁에 얼룩처럼 귀가 붙어 있어

오래도록 걸어 마음에 귀를 달 수 있다면

나는 아주 고요한 시를 쓰고 싶어

나무 아래에서

가을엔 너를 만나고

눈이 먼 물컵과 살아보았네

찾아도 보이지 않고

더듬으면 보이는 곳에 물이 앉아 있었네

나무 아래에서 너는 시집을 읽고 있어

고백하지 않아도 너는 눈이 손 끝에 달려 있어

사랑에 빠진 이들이 너의 손끝을 훔쳐 가네

 

나는 가을 내내 나무에서 색을 지우고 있었지

더듬어서 붉은색을 찾을 수 있다면

나는 아주 붉은 시를 쓰고 싶어

 

나무 아래에서

 

겨울엔 알 수 없는 너를 만나고

 

- 문학과 사회 2014 겨울호

 

 

1972충남태안출생

 2001포에지로등단, 기억 이동장치,오후 여섯시에 나는 가장 많이 길어진다,물속의 피아노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