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광규시인 작품>
나무아래에서
신영배
봄엔 숨이 붙은 이파리와 살아봐야지
여름엔 너를 만나고
귀가 먼 백지와 살아보았네
말은 들리지 않고
떠오른 달 속에서 물이 날고 있었네
바람 소리를 모른 채 바람을 따라가는 귀가 있었지
나무 아래에서 너는 시집과 함께 흔들리고 있어
낯선 거리의 저녁에 얼룩처럼 귀가 붙어 있어
오래도록 걸어 마음에 귀를 달 수 있다면
나는 아주 고요한 시를 쓰고 싶어
나무 아래에서
가을엔 너를 만나고
눈이 먼 물컵과 살아보았네
찾아도 보이지 않고
더듬으면 보이는 곳에 물이 앉아 있었네
나무 아래에서 너는 시집을 읽고 있어
고백하지 않아도 너는 눈이 손 끝에 달려 있어
사랑에 빠진 이들이 너의 손끝을 훔쳐 가네
나는 가을 내내 나무에서 색을 지우고 있었지
더듬어서 붉은색을 찾을 수 있다면
나는 아주 붉은 시를 쓰고 싶어
나무 아래에서
겨울엔 알 수 없는 너를 만나고
- 문학과 사회 2014 겨울호
1972충남태안출생
2001포에지로등단, 기억 이동장치,오후 여섯시에 나는 가장 많이 길어진다,물속의 피아노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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