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꽃을 보다
구석본
철조망가시를 감고 넝쿨장미가 꽃을 피웠다
저 꽃, 철조망가시가 뿌리다
장미꽃이 향기를 독가스처럼 뿜어내는 5월의 한낮,
햇살 한 줄기, 철조망가시에 걸려 있다
철조망가시가 햇살 속으로 깊숙이 들이민다
햇살이 뿌리 깊은 꽃을 피우고 있다
당신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디서 전화하는 거야? 어딘지 모르겠어, 안도 없고 밖이 없는 곳,
처음도 끝도 없는 곳,
구름이 모여 허공 속으로 수많은 가시를 퍼뜨리고 있는 곳
무지갯빛 가시에서 무지개가 솟기도 하는 곳,
날아오르는 새 떼들도 여지없이 가시가 되어
허공 속으로 박히고 있어.
누구랑 있어? 혼자야.
복사된 무수한 혼자.
얼마 후 구름 속으로 들어갈 거야
그리고 수많은 가시로 분해되어
마침내 허공 속으로 뿌리 내릴 거야.
당신 말의 가시가 내 가슴 깊숙한 곳에 뿌리로 내린다.
내 몸에서 하루 종일 꽃이 피어난다.
무수하게 복사된다.
바람처럼 피어난다.
구름처럼 뭉쳤다 흩어지고 뭉쳤다 흩어진다.
저 꽃, 외로움의 가시가 뿌리다.
계간 『시와 표현』 2013년 가을호 발표
<약력>
경북 칠곡에서 출생. 영남대학교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5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지상의 그리운 섬』, 『노을 앞에 서면 땅끝이 보인다』, 『쓸쓸함에 관해서』 등이 있음. 1985년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시와반시' 주간 역임. 현재 대구교육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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