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발아發芽
신병은
건너는 화법을 몰랐다
열릴 것이라고 믿었지만 눈감은 단단한 기억일 뿐이었다
눈빛 무성한 원시림의 기억이 물의 허물로 남아
저물녘이면 한없이 흐르고 싶어 젖은 집 한 채를 짓는
그 여자, 물을 돌려주세요
뜨거운 곳을 열어 밤새 호로롱 호로롱 맑은 물소리를 내다
아침마다 휘어있는 것들의 척추를 바로 세워주는
그 여자의 자존, 바람을 돌려주세요
겨울바다를 가로질러 거실 한가운데 까지 성큼성큼 들어와
난분의 잎새 위에 앉았다가 사각형의 유화액자를 힐끔거리다
겨울 눈빛 허전한 허리를 껴안는다
이윽고 지난 가을 낙엽 진 아랫목에 형광의 지느러미를 세운
그 여자, 비워낸 자리에 몇 개의 말줄임표를 달고
가끔은 시도 때도 없이
야릇한 웃음꼬리 살랑대며 달려오는 저 바람으로
한 달에 한 번 봇물 터지는 아랫목을 데운다
...... 열릴 것이다
오랜 기억이 한 생애가 되는 저 여자의 꽃눈,
뼈가 되고 싶은 바람의 오르가즘이라 했다
-웹진시인광장 2월호-
<약력>
1955년 경남 창녕 출생, 1989년 《시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바람과 함께 풀잎이』(혜화당, 1990)『꿈의 포장지를 찢어내며』(혜화당1994),『강건너 풀의 잠』(혜화당, 2003)『바람 굽는 법』(소리, 2006),『잠깐 조는 사이』(고요아침, 2010)과 시화집 『2+1』(까치, 2005). 『휴』(고요아침, 2014)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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