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시를 위하여 (시인들의 좋은 시)

[스크랩] 알뜰 함박눈 총판 / 박형권

이삐김밝은 2014. 1. 22. 14:38

 

 

 

 

 

 

 

   알뜰 함박눈 총판

 

 

                                                     - 박형권

 

 

 우리의 가난은 음악이어서

 피아노를 항상 큰 방에 모셨다

 좁은 집으로 이사하기 전에

 우리의 자부심이었던 가난을 고작 삼천 원에 팔았다

 ─이건 버리는 비용이 더 들어요, 이걸로 따님 과자나 사주세요

 팔려간 가난이 허기를 입고

 지금 알뜰 피아노 총판에서 비발디를 연주한다

 밤새 내린 눈 위에 또 눈이 내려

 아내와 내가 두 마리의 펭귄처럼

 뒤뚱뒤뚱 돈의 파고(波高) 높은 곳으로

 삼 개월 밀린 공과금을 내러 가는 길

 엄마 아빠 돈 빌려서 돈 내러 가는 기분 꿀꿀 하실 테니

 기분 좋아지라고 겨울을 연주한다

 그래

 네 목소리를 우리는 기억하지

 음표였다가 콩나물 천 원어치였다가

 우리 식구들의 장엄한 청국장이었던 너의 악보를 기억하지

 ─그까짓 삼천 원 받지나 말걸

 뒤뚱뒤뚱 뒤뚱 미끄덩

 알뜰 함박눈 총판 내 아내가 미끄러지고 만다

 난 우리가 궁금하다

 왜 미끄러지면 다시 일어나야 하는지

 미끄러진 김에 누워 있으면 왜 안 되는 것인지

 함박눈 저가로 공급해주시는 이런 날에는

 더 안 되는 것인지

 

 

 

 『서정시학』2013년 겨울호

 

 

 

  - 2006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우두커니><전당포는 항구다>

 

 

 

출처 : 폴래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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