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시를 위하여 (시인들의 좋은 시)

[스크랩] 혈화 / 김은령

이삐김밝은 2014. 2. 18. 08:57

 

 

 

 

 

 

 

  혈화

 

 

                                         - 김은령

 

 

 우연히 들른 고택 울밖에

 서성, 서성거리는 봉선화들

 이미 한물간 처지인 줄 알면서도

 속수무책이었을 꽃, 마지막 잎을 땄다

 심장 소리 간격으로 콩콩콩 찧어서

 꽃의 피를 볼 때까지 짓이겨서

 열 손가락 끝 랩으로 동여매어 하룻밤을 잤다

 요즈음에 누가? 싶다가도

 꽃물이 손톱에 새겨지길 바라면서

 조심조심 하룻밤을 잤다

 손톱은 밤사이 꽃이 되었다

 

 고택 울 밖으로 밀려 나와

 서성, 서성이는 장삼이사

 이미 끝장난 처지인 줄 알지만

 짓이겨서라도, 피를 보고서라도

 가계家系를 동여매고 싶은,

 꽃이 되고 싶은 꽃

 

 

 

 시집『차경』황금알 2012

 

 

 

 - 1961년 경북 고령 출생.

   1998년<불교문예>로 등단

   시집<통조림>

 

 

 

출처 : 폴래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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