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통 안에서는 무슨 소리가 들리나
수직으로 천년, 돌은 뿌리를 내린다.
빨간 외투 걸치고
몇날며칠 귀를 열어두고 있었으므로
소리의 사연들은 고물거리며 바닥을 기어 다닌다.
날개 있는 것들은 모두 한 번씩
깡통에 던지는 동전처럼 발치에 웃음을 던져주고 갔다.
초등학교 삼층 난간에 날아 앉는 비둘기 떼,
측백나무에서 은행나무 우듬지로 날아오르는 직박구리,
직박구리에 놀라 까무러치는 어린 참새들.
빙글빙글 둥근 양철통으로 만든 운동장 안
바람의 심줄 찢어 날리는 솜사탕이며
보랏빛 매지구름에서 일렬종대로 떨어지는 비의 씨앗들이
온갖 새들의 울음소릴
천둥소리로 꿰어 오고 있었다.
—달이 검은 해를 베어 먹는 밤
저 늙은 우체통 뒤로 가만히 다가가 껴안을 듯
귀 대고 들어봐, 잘 들어봐.
한숨 소리, 옆구리 풀어 상처를 내뵈는
땅속 푸른 뱀의 울음소리,
떨어지는 제 그림자를 냉큼 부리로 물고 가는
세 발 까마귀,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저 까마귀
숯불처럼 붉은 천 년의 울음소리 들릴 것이다.
《시안》2013년 가을호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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