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세상으로 띄워 보내는 말 (신작시)

평행선/김밝은

이삐김밝은 2017. 3. 4. 23:10




평행선


                김밝은

 

오랜만이어서 신이 난

눈이 저 혼자 달음박질로 오는 아침

 

기를 쓰며 오물거리던 문장들을

끝내 소화시키지 못한 채 뱉어내버렸다

 

오래전부터 오른쪽이 잘 들리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자꾸 왼쪽으로만 지나간다고

구부러진 길 위에서 성화를 내던 사람

 

아직 누구와 입 맞춰주지 못한 노을빛 입술들을

옹기종기 매달고 있는 감나무가,

너도 누군가에게 잊히거나 무의미한 사람이 돼 있을 거라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갓 구운 빵 냄새가 지상 가득 고소하게 읽히는 시간

 

어디선가는 폭설이라는데

내 어깨에 내려앉는 건

차마 껴안지 못한 얼굴들, 결국 삼키지 못한 문장들

 

누군가와의 사이에 금이 가는 건 언제나 사소한 일로 시작되었다



                                                     『시와시학 』 봄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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