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3
- 자은도에서
김밝은
붉게 밑줄을 그어놓았던 날의 어디쯤에
숭숭 구멍 뚫려가던 웃음의 뼈대들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을까요
생각을 거스르며 새어나갔던 말들의
흔적이 묻은 짜디짠 바람이
가슴을 할퀴며 아프게 지나갔습니다
비밀의 틈으로 밀어놓았던 시절의 문장들
아슬아슬한 시간의 모퉁이를 헤매다 와서
허리 굽어버린 팽나무 아래를 서성거리고,
마음으로만 깊어지는 이름들이 아득해져 갑니다
나를 오해한 나처럼
눈치 없는 저녁을 곁눈질하면
허공 가득 따끔따끔한 기억들을 띄워놓고
기꺼이 눈물을 들이미는,
먼,
남쪽의 어디쯤입니다
2016 문학선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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