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세상으로 띄워 보내는 말 (신작시)

애월을 그리다 5/ 김밝은

이삐김밝은 2017. 3. 4. 23:18







(涯月)을 그리다 5


                                         김밝은

 

애월,

어긋나버린 목소리처럼 비가 내리는 날

 

비자나무 냄새가 온몸으로 파고들던 숲길로 들어서지 말았어야 했을까

까마득한 절벽을 해국으로 펼쳐놓은 바닷가 가까이에도

 

세상의 손바닥 위에서 미끄럼 타는 일을

언제부터였는지 뒤척이는 인연들을

튼튼하게 매듭 묶고 싶어서였는지도 몰라

 

이제 더는 마음에 들여놓지 않겠다며

씩씩대던 시절마저 와락 달려들었어

 

눈으로 젖어드는 풍경과

비를 품은 절벽 아래서 올라오는 낯익은 냄새들이

질펀한 개펄에 여리던 발을 성큼 들여놓았던 때부터

이미 섬의 여자였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은데

 

애월,

다정해서 눈물겨웠던 한때의 안부를 움켜잡고

온 생을 견디며 살아가는 걸까

 

동그랗게 말아 올리지 못한 이름의 바깥에서

젖고 또 젖으며

    


              『시인수첩』 2017 봄호 

 


'시 세상 > 세상으로 띄워 보내는 말 (신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자나무를 닮았다/ 김밝은  (0) 2017.03.14
동지/김밝은  (0) 2017.03.14
시, /김밝은  (0) 2017.03.04
평행선/김밝은  (0) 2017.03.04
문득 3/김밝은  (0) 2017.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