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셔츠를 다림질하다
김밝은
대낮에도 백열등 불빛이 흐릿한 물감처럼 퍼지던
면목동 어디쯤
와이셔츠 주머니에 시간을 다림질할 때마다
스르륵… 스르르륵……
내 손가락 지문도 조금씩 다림질되어 가고
쉴 새 없이 미싱으로 밥을 짓던 미스 조
백열등 빛깔로 물들어 가는 눈을
안약 한 방울로 씻어내며
자르륵…드르르륵……
기우뚱거리는 삶을 다잡아 일직선으로 꾹꾹 박아냈었다
오동통하게 살이 쪘던 재단사 아저씨를
기어이 따라갔을까
기억에서 몰아내 버렸다고 자랑했던 오래전 얼굴들이
옹골지게 앉아 있는 와이셔츠를
단숨에 다림질해 버린,
눈이 뜨겁다
창조문예 2016 년 10월호
'시 세상 > 세상으로 띄워 보내는 말 (신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득 2/김밝은 (0) | 2017.01.04 |
---|---|
풍경에서 조금 멀어지다/김밝은 (0) | 2016.10.15 |
능소화/김밝은 (0) | 2016.10.15 |
낯선, 여전히 낯선 /김밝은) (0) | 2016.10.12 |
문득/ 김밝은 (0) | 2016.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