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세상으로 띄워 보내는 말 (신작시)

문득/ 김밝은

이삐김밝은 2016. 9. 22. 00:24




                   문득


                                      김밝은 

                        

헤어지기 적당한 때를 궁리하고 있는 한 계절을 만나네

 

 

오래된 기억의 방, 푸른 이끼 가득한 순간을 딛고

꽃이라는 이름으로

나이 들어가는 너와 나이 들어버린 내가 만날지도 모르겠네

 

 

이별하기 좋은 때도 있는 거라고 짱짱한 힘으로 달려오면

머쓱해진 겨울빛이 구름다리 위에서 서성이고

낭창낭창한 어느 하루로 데려다 주던

수양벚꽃 뭉텅 뽑혀나간 자리까지,

 

 

만져보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것들은 언제나 아프다네

 

 

버려지는 약속 붉어지는 목소리 입을 떼면 가벼워지는 몸,

몇 그램의 동정만이 달그락거리네

 

 

까슬까슬하던 어제를 말끔히 복사해

무너지는 오늘로 다시 데려오면

단단한 절망의 벽 사이에서 가느다란 희망이 울먹이네


 

빨간 속옷을 입어야 운이 좋아진다는 점괘를 만나기도 하고,

마음을 묶었다 풀었다 하는 사이

등 뒤에서는 낡은 인기척들이 동그랗게 들려오기도 하네


 

우로보로스(Uroboros)*가 제 꼬리를 탐닉하며 자라는

또 다른 시간이 어딘가 있다고도 하네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 우주는 삶과 죽음의 끝없는 순환 고리를 이루며 돌고 돈다는 영원의 상징이기도. 우로보로스가 만든 원은 고대 신화적인 맥락은 무한, 신 등을 상징하기도 함.

  

 


2016 『문학과 창작』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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