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를 지나며
이인서
꽃피는 사이 여행을 다녀왔다
어떤 사이는 눈 깜짝할 사이로 짧고
어떤 사이는 계절이 몇 번 지나가도록 길었다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한 사이를 옮겨 다니며 살고 있는 시간에 안녕이란 없다
계단과 계단 사이 오르막을 견디던 시간도 있었다
돌과 방망이 사이의 옷감
불과 물 사이의 냄비
봄과 가을 사이의 여름처럼 사이라는 말에는 중간이 없고 여러 개의 빈 방이 있을 뿐이다
사이는 기승전결이 없다
고리처럼 연결된 사이의 모양은 다양하다
옷감처럼 부드러운 사이와 냄비처럼 뜨거운 사이
그리고 여름처럼 반팔의 사이가 있다
하늘을 날고 별을 세고 몇 번의 방을 옮겨 잠드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한
사이는 머무는 것 같지만 진행형이다
누군가가 죽어가는 사이 태어나는 사이
사이는 사이로 바쁘다
집을 비운 사이 조금 긴 사이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꽃이 지는 사이 나를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고
과거형이 된 신문기사들과 몇 통의 우유가 여전히 안과 밖 사이에서 상하고 있다
-2015 시작 겨울호
이인서- 2015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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