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궁
김밝은
풍경하나 물고와 오늘과 내일사이 공간을 이어주는
새들도 날개에 묻은 나른한 땀방울을 털어내는 한낮
뭉텅뭉텅 여름을 떼어내고 싶은 하늘 아래
고요만 배부르게 껴안은 내 곁으로
한 계절이 팔짱을 낀 채 느릿느릿 걸어가고
팔팔한 햇살을 뚫고 가는 바람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한 올이라도 잡아보려 애쓰는 배롱나무
뜨거운 그늘 속에서 꽃빛을 키우는 숨소리가 무겁다
새들의 날개에 두 눈 동그랗게 얹어보다가
오래된 눈물의 힘으로 기다리고 쓰다듬어 윤기 나는
궁의 나무기둥들을 지나
입술을 깨물며 견뎌내던,
통증을 품은 뾰족한 생의 잔뼈들을 끄집어내려 하자
햇살에 잘 익어 고슬고슬한 눈물
오래된 회화나무 잎사귀 곁에서 반짝이고 있다
- 시와 사상 겨울호(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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