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세상으로 띄워 보내는 말 (신작시)

어느날, 궁/ 김밝은

이삐김밝은 2016. 1. 10. 20:12

 

 

어느 날, 궁

김밝은

 

풍경하나 물고와 오늘과 내일사이 공간을 이어주는

새들도 날개에 묻은 나른한 땀방울을 털어내는 한낮

 

 

뭉텅뭉텅 여름을 떼어내고 싶은 하늘 아래

고요만 배부르게 껴안은 내 곁으로

한 계절이 팔짱을 낀 채 느릿느릿 걸어가고

 

팔팔한 햇살을 뚫고 가는 바람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한 올이라도 잡아보려 애쓰는 배롱나무

뜨거운 그늘 속에서 꽃빛을 키우는 숨소리가 무겁다

 

새들의 날개에 두 눈 동그랗게 얹어보다가

오래된 눈물의 힘으로 기다리고 쓰다듬어 윤기 나는

궁의 나무기둥들을 지나

 

 

입술을 깨물며 견뎌내던,

통증을 품은 뾰족한 생의 잔뼈들을 끄집어내려 하자

 

 

햇살에 잘 익어 고슬고슬한 눈물

오래된 회화나무 잎사귀 곁에서 반짝이고 있다

 

 

- 시와 사상 겨울호(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