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세상으로 띄워 보내는 말 (신작시)

뒤돌아선 시간을 가진-화방사에서 / 김밝은

이삐김밝은 2015. 9. 29. 11:46

 

 

 

뒤돌아 앉은 시간을 가진

-華芳寺에서

                                                  김밝은

 

 

붓꽃도  차마  제 빛으로 피어나지 못하고 있는,

요사체 마당이 온통 적막이다

 

오래된 팽나무의 이끼에 살이 오르고

멀구슬꽃향기가 막무가내 올라오면

배고픈 마음 곁에서 차마 떠나지 못했던 바람만은

희미해져가는 경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겠다

 

수직의 바위 앞에 멈추어선 등 뒤로

아침햇살이 동자승처럼 잠시 폴짝이다 멀어져간다

 

산 아래 마을에서는

오월햇살이 보릿대와 나란히 익어가는 중이고

뒤돌아보면 세상은 여전히 서먹한 풍문으로 가득하고

향기를 나누곤 하던 사람은 떠나서 오래도록 가슴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도 안계세요...

전생에서 이승을 부르는 소리처럼 아득해진다

 

마음을 빳빳하게 다림질한 뒤라도

다시 이곳에 이르지는 못하겠다

 

 

2015년 유심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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