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세상으로 띄워 보내는 말 (신작시)

술의 미학/ 김밝은

이삐김밝은 2013. 12. 16. 11:00

 

 

술의 미학/ 김밝은

 

 

가끔 심장이 시큰둥해지는 날

 

 

곱게 부순 달빛가루에

달콤한 유혹의 혀를 잘 섞은

목신 판의 술잔을 받는다

 

 

찰나의 눈빛에 취해

비밀의 말들을 너무 많이 마셨나

날을 세운 은빛 시선이

애꿎은 꽃잎만 잘라내고 있다

 

 

물구나무서던 시간들이

절룩거리는 기억을 붙잡고 일어서고

살 속에 섞인 위험한 말들, 잠들지 못해

서로 부딪치고 깨어지기도 하면

멀리 사과밭에선 지진 일기도 했을까?

 

 

옆구리를 내어주며 쨍쨍 부딪치던 건배의 얼굴이

늑골 어딘가에 콕콕 박혀 가쁜 숨을 몰아쉰다

 

 

끝내 토해내지 못해

상처 난 이름으로 가슴 울렁거리고

손가락만 흔들어도

열꽃처럼 번져가는 뜨거운 노래들로

바람 속 영혼들처럼 마음 흩날리는 날*

 

 

사랑이 사랑으로도 치유되지 않아

벌거벗은 혀들이 술잔 속에서 팔딱거리고 있다

 

 

 

*인디언 달력에서 1월을 뜻하는 말중 '바람 속 영혼들처럼 눈이 흩날리는 달'에서 변용

 

 

2013.  미네르바 겨울호 (신인상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