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시를 위하여 (시인들의 좋은 시)

당신빼고는 다 지겨웠어- 황학주

이삐김밝은 2012. 9. 18. 21:21

-출처; 무심재님의 사진-

 

 

당신빼고는 다 지겨웠어

 

                              황 학 주

 

이름 말고는 적어 넣을 수 없는

이름만으로도 밖으로 넘치는

절룩이는 생각의 의자에 앉아

 

빠지고 가늘어지는 머리카락을 단념하듯이

점점 이름을 까먹다 가는 사정이

기분 나쁜가?

나이를 몇 살 줄여준다 해도

달라질 게 없는데

 

쓰러진 의자를 다시 세우며

이름이 가장 어려운 날을 내가 산 것인지

가만히 창밖을 보고 있는 동안

 

더러더러 눈에 찍히는 머나먼 시간이여

어느 하늘가로 미루나무 이파리처럼 뒤집히며

내 사랑의 행인 흐려지네

 

저리도록 기울여 앉아

다리가 흙에 묻히도록 빠져들던 생각의

허름한 의자를 집 앞에 내놓는 동안

나는 나의 끝나지 않은 무명이었다

사랑이 역광이 되는 거기까지는 말없이도 통한다

이름이 하나 다리에 못을 친

내 작은 지상 동그란 무덤까지

 

당신 빼고는 다 지겨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