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등대에서 휘파람
- 심창만
아라비아 귀신처럼 우두커니 서서
나는 아무 주문도 외지 못한다
슬하에 바다를 두었던 한 시대가 낯설다
물고기 이름처럼 사소한 바다
시절이 있다는 것이 끔찍하다
시간의 거친 창이
불 꺼진 내 눈알을 길게 찔러놓았다
수평선은 내게 긴 목을 주었으나
늘어진 거미줄이 숨을 조여와
내 두개골은 폐허의 진앙지처럼 텅 비었다
달빛은 동맥을 뿌옇게 풀어놓고
도대체, 해당화는
10년 전의 피를 갖고도 꽃인 것이다
나는 무섭다
우두커니 서서 나는 나의 무덤도 아니다
10년 전에 내가 젊었었다니
사막 같은 바다에
내가 나의 표지(標識)였다니
달빛도 바람도 길을 잃는
퀭한 두개골,
무변(無邊)의 파도가 넘실대는
이 적요의 중심.
시집『무인 등대에서 휘파람』푸른사상 2012년
- 전북 임실 출생. 1988년<시문학> 1997년<문학동네>로 등단
출처 : 폴래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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