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시를 위하여 (시인들의 좋은 시)

삼베옷을 입은 自畵像/ 조용미

이삐김밝은 2012. 5. 8. 01:31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조 용 미

 

폭우가 쏟아지는 밖을 바라보고 있는

이방을  凌雨軒이라 부르겠다

능우헌에서 바라보는 가까이 모여 내리는

비는 다 直立이다

휘어지지 않는 저 빗줄기들은

얼마나 고단한 길을 걸어 내려온 것이냐

 

 

손톱이 길게 쩍 갈라졌다

그사이로 살이 허옇게 드러났다

누런 삼베옷을 입고 있었다

치마를 펼쳐들고 물끄러미 그걸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입은 두꺼운 삼베로 된 긴 치마

위로 코피가 쏟아졌다

입술이 부풀어올랐다

피로는 죽음을 불러들이는 독약인 것을

꿈속에서조차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일까

 

속이 들여다보이는 窓봉투처럼

명료한 삶이란

얇은 비닐봉지처럼 위태로운것

명왕성처럼 고독한 것

 

직립의 짐승처럼 비가 오래도록 창밖에 서 있다

 

 

 

문학과 지성사, 2004. 11/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조용미; 1962년 고령출생.

1990 한길문학에  청어는 가시가많아 등을 발표하며 시단에 나옴

시집으로「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일만마리 물고기가 산을 날아오르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