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조 용 미
폭우가 쏟아지는 밖을 바라보고 있는
이방을 凌雨軒이라 부르겠다
능우헌에서 바라보는 가까이 모여 내리는
비는 다 直立이다
휘어지지 않는 저 빗줄기들은
얼마나 고단한 길을 걸어 내려온 것이냐
손톱이 길게 쩍 갈라졌다
그사이로 살이 허옇게 드러났다
누런 삼베옷을 입고 있었다
치마를 펼쳐들고 물끄러미 그걸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입은 두꺼운 삼베로 된 긴 치마
위로 코피가 쏟아졌다
입술이 부풀어올랐다
피로는 죽음을 불러들이는 독약인 것을
꿈속에서조차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일까
속이 들여다보이는 窓봉투처럼
명료한 삶이란
얇은 비닐봉지처럼 위태로운것
명왕성처럼 고독한 것
직립의 짐승처럼 비가 오래도록 창밖에 서 있다
문학과 지성사, 2004. 11/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조용미; 1962년 고령출생.
1990 한길문학에 청어는 가시가많아 등을 발표하며 시단에 나옴
시집으로「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일만마리 물고기가 산을 날아오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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