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비의 은팔찌
-多利의 말-
문효치
왕비여 여인이여
내가 그대를 사모하건만
그대는 너무 멀리 계십니다
같은 이승이라지만
우리의 사이에는 까마득히 넓은 강이 흐릅니다
그대를 향해서 사위어지는 정한 목숨
내가 만드는 것은 한낱 팔찌가 아니라
그대에게 달려가려는 내 그리움의 몸부림입니다
내가 빚은 것은 한낱 용의 형상이 아니라
그대에게 건너가려는 내 사랑의 용틀임입니다
비늘 하나를 새겨 넣고 먼 산 보며 한숨집니다
다시 발톱 하나 새겨넣고
달을 보며 피울음 웁니다
내 살을 깍아 용의 살을 붙이고,
내 뼈를 빼어내어 용의 뼈를 맞춥니다
왕비여,여인이여. 그대에게 날려 보내는 용은
작은 손목에 머무르지 않고
그대 몸둥이에 휘감길 것이며
마침내 온 몸 구석구석에 퍼져 스며들 것이며,
그러다가 지쳐 쓰러지더라도
파고 들 것이며, 파고 들어 불 탈 것이며
그리하여 저승의 내정( 內庭)까지도
따라 들어갈 것이며
왕비여,여인이여 내가 그대를 사모하는 것은
그대 이름이 높으나 높은 왕비여서가 아니라
다만 그대가 아름다워서일 뿐,
눈이 시리게 아름다워서일 뿐입니다
*다리 多利;무령왕비의 은팔찌를 만든 사람으로 그 팔찌에 용을 새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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