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세상으로 띄워 보내는 말 (신작시)

죽음에 관한 최초의 기억/ 김밝은

이삐김밝은 2016. 4. 17. 18:47

 

 

 

                 죽음에 관한 최초의 기억

 

                                                              김밝은

 

 

 

가난이 밥 냄새만큼 고소한 섬마을 친구였어 가슴이 봉긋한 분홍을 가진 때였을 꺼야 눈을 감지 않고도 햇빛을 배부르게 먹으며 살았지 우리들의 첫 굴욕은 아카시아 잎을 떼어내는 낭만의 가위바위보 대신 바다 건너 먼 나라의 글자 속으로 짜디짠 시간을 최대한 무겁게 구겨 넣는 일이었어

 

아빠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엄마는 지문이 닳아지도록 바빠서 할머니의 부르튼 목소리가 노을 속에서 붉어질 때까지 유챗대의 단맛 한 움큼, 사금파리 한 조각으로 어린 생生을 허비하기도, 가끔 서로의 봉긋한 분홍에 눈길을 주며 키득거리기도 했었는데

햇빛을 너무 많이 탐낸 탓이었는지 어느 날 깊고 어두운 시간을 몸속에 가득 넣은 듯 눈을 닫아버린 너를 보았지 꽃상여도 없는 죽음이 향기처럼 가볍다는 생각, 신은 사람이 되고 사람은 물고기가 되는* 시간이었을까

 

그때부터였는지, 가끔 어지러운 꿈을 꾸곤 해 유난히 많은 분홍이 매달린 살구나무 아래 낯선 얼굴의 네가 자꾸만 나를 바라다보는…

내가 기다리는 시간은 붉은 동백꽃 그늘과 금목서의 노란빛깔 자장매의 분홍 그리고 시베리아의 푸른 눈이 숨겨놓은 흰 자작나무인데

네가 자꾸 지상으로 던지는 것 같은 흰 눈송이들만 바람의 비문 속으로 촘촘하게 박히는 날이야

 

 

* 신은 사람이 되고, 사람은 물고기가 되는 ;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 중에서 인용

 

 

 

2016년 다층 봄호, 젊은시인 7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