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세상으로 띄워 보내는 말 (신작시)

낙화/ 김밝은

이삐김밝은 2016. 2. 29. 12:54



낙화


          김밝은


이제 그만 놓아버릴까


섹시한 자궁을 만들던 순간도 있었지만

허기진 어깨 위로 우울이 내려앉는 시간입니다


저 길을 만들어 놓은 것 같은,

가지를 타고 오를 때부터 낙법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마풍만 불어도 온 몸 지끈거려

무릎사이에 창백한 얼굴을 묻으면

눅눅하게 저물어가는 목숨이 보여요


가슴에 붉은 밑줄을 그으며 새겼던 문장들오

무덤덤해지는 때가 오면

구불구불한 기억의 방에 우두커니 남겨지겠지요


비꽃 떨어지는 몸에는 아직

당신이 모르는 숨소리도 참방거리는데

이쯤에서

한껏 우아한 몸짓을 가장하며 뛰어내려야 할까요


생각을 베고 누워서도

사람보다 더 따뜻한 몸을 가진 이름을 갖지 못해

무한한 슬픔의 경계에서 매혹을 꿈꾸었던 몸짓


차마, 적요입니다


2016년 미네르바 봄호 신진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