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 사랑을 낳는다/ 이재무
더 이상 비밀이 없는 삶은 누추하고
누추하여라 사랑하는 이여, 그러나
내가 밟아온 저 비린 사연을 다 읽지는
말아다오 들을수록 역겨운 냄새가 난다
나는 안다 내생을 그대 호기심 많은
눈이 다녀갈수록 사랑이 내게서 멀어져간다는
것을, 오월의 금빛 햇살 속에서
찬연한 꽃 한 송이의 자랑을 자랑으로만
보아다오 절정을 위해 온 생을 앓아온
꽃의 어제에 더 관심이 많은 그대여,
꽃이 아름다운 것은
꽃이 아직 우리에게 비밀이기 때문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살기 위해
소리없는 처절한 절규를 쉬지 못한다
생의 이면이 늘 궁금한 그대여,
그 어떤 갈애가 그대의 잠을
앗는 날은 어둠이 실비처럼 내리는
여름의 서늘한 숲 속으로 한 마리 새의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걸어가보아라
그대는, 그대가 만들어내는 작은 발자국
소리에도 크게 놀라 두리번거릴 것이다
숲은 파고들수록 외경과 비의로 가득 차고
그대는 문득 살아 있다는 것의 존엄과
두려움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생이 비루하지 않고 신성한
선물이라는 것을 보고 온 그대는 충분히
아름답다 내가 그대를 한없이 그리워하는
것은 그토록 간절했으나 여직 그대의 생에
내 기다림의 손이 가 닿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 보아라, 생의 비밀이 사라진 뒤
지상의 거리에 넘쳐나는 그 무수한
추문과 널브러진 사랑의 시체를
―시집 『위대한 식사』 세계사, 2002
―이재무
. 1958년 충남부여출생, 한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국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수료
. 1983년 무크지《삶의 문학》에 〈귀를 후빈다〉외 4편으로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섣달 그믐》《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벌초》《몸에 피는 꽃》《시간의 그물》《위대한 식사》《푸른 고집》《저녁 6시》《경쾌한 유랑》등
. 난고문학상, 편운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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