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그댑니다/ 이정록
암에 걸린 쥐 앞에 열두 씨앗 놓아둡니다
성한 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씨알 쪽으로
병든쥐가 시들시들 다가가 그러모읍니다
오물오물 독경하듯 앞발로 받듭니다
병든 어미소를 방목합니다
건강한 소들은 혀도 디밀지 않는 독풀
젖통 출렁이며 허연 혀로 감아챕니다
젖은 눈망울로 뿌리째 뽑아먹습니다
그대 향한 내 병은 얼마나 깊은지요
그대 먼 눈빛에서 낟알을 거둡니다
그대 마음의 북쪽에 고삐를 매고
살얼음 잡힌 독풀을 새김질합니다
내가 아프니까 비로소 그댑니다
―시집 『정말』2010. 3.25, 펴낸곳,창비
이정록
1964년 충남 홍성 출생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풋사과의 주름살』『버드나무 껍질에 새들고 싶다』『제비꽃 여인숙』『의자』등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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