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회 최치원 신인문학상 수상시
雪國
- 권기만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열차는 수전증 걸린 노인 같다
툰드라의 혹한이 창틈으로 세상 끝까지 옷깃을 세웠다
모든 경계를 다 지워야 도착한다는 꿈에서의 열흘,
驛舍는 씩씩거림만 남은 주전자 바닥 같다
여행자로 살다 간 형은 왜 이 먼 곳에 와서 죽은 것일까
시체보관소에 잠들어 있는 형은 너무도 편안했다
빙하의 바람을 뼈에 새기면 설국을 찾을 수 있다
갈겨쓴 글자가 설인의 흔적 같던 형의 엽서,
교수직을 던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간 형은
돈이 생기면 보드카만 마셨다
형의 수첩을 보고서야 설국으로 가는 길이 있단 걸 알았다
삶에 행로를 끼워 넣으면 어디에도 없는 나라가 만들어진다
수첩의 흰여우언덕은 이제 찾을 수 없는 나라다
눈 덮인 북극 하늘을 조금씩 잊으면서 봄은 덧났다
한 송이 꽃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향해 뛰어 내렸다
살아보고 싶은 존재에 가장 가깝다는 나라,
한 번 내디딘 자리에서 지상에 없는 제국을 만나보라고
북극점 받아 안고 가만히 날개를 펴는 목련,
내 눈속에도 설국의 지도가 그려지고 있다
경북 봉화 출생. 2012년 <시산맥>등단
출처 : 폴래폴래
글쓴이 : 폴래폴래 원글보기
메모 : 폴래폴래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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