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라크르(모범도 원본도 없는 복제물속의 삶)
앤디 워홀(Andy Warhol)의 그림을 떠올려보자. 그저 당신 생각나는 대로 한 장 고르면 된다. 마를린 먼로(Marilyn Monroe)의 얼굴들이 색조의 변주 속에서 나열되고 있다. 다른 그림에선 코카콜라 병들이 기나긴 행진을 하고 있다. 앤디 워홀의 팝아트 앞에서 우리는 후, 입김으로 불어 날린 손오공의 머리카락처럼 많은 분신(分身)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저 많은 여배우 가운데 누가 진짜인가? 저 많은 콜라 병들 가운데 어느 것이 원본인가? 원본이 있다기 보다는 오직 모사품들의 행렬이 있는 것 아닌가? 아니, 원본과 모사물을 구별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이런 식의 가짜, 원본과 복제가 구별되지 않는 영역 속에서 바로 시뮬라크르가 서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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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복제물이 복제물일 수 있는 것은 원본을 전제할 때만 가능하다. 원본의 상대적인 개념으로서만 복제라는 말은 허용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현대 철학에서 시뮬라크르 개념이 가지는 독특성이 있다. 그것은 기원이 부재하는 복제물인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사라진 뉴욕의 쌍둥이 타워에 대해 생각해 보자. 현대 사회의 특성으로 시뮬라크르 개념을 제시했던 프랑스 사회학자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 d)는 이 건축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 쌍둥이 타워는 두 개의 펀치 테이프처럼 보입니다. 오늘날 그것들은 서로 복제되고, 이미 복제 상태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쌍둥이 타워가 ‘이미’ 복제된 상태 속에 있다고 했을 때, ‘이미’라는 말이 강조하는 바는 복제는 원본 뒤에 이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앞서는’ 사건이라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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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까닭은 쌍둥이 탑의 복제는 원본 없는 복제, ‘상호 복제’이기 때문이다. 바로 ‘기원 없는’ 복제가 쌍둥이 타워가 존립하는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본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어느 것이 원본이고 복제물인지 구별할 수 없는 것이 시뮬라크르의 세계인 것이다. 정말로 우리는 날마다 이런 시뮬라크르의 세계를 체험하고 있지 않은가? 기원도 원본도 없이 정보의 무한 복제의 연쇄가 빠른 조류처럼 흘러가고 아바타가 우리의 삶을 싣고 가는 인터넷 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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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크르 개념이 담고 있는 또 다른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근대적 주체의 부정이다.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이래로 철학은 인간 의식을 존재자들의 존재함과 의미의 근거로서 확립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원본 없는 복제물로서의 시뮬라크르는 바로 의미의 원천으로서의 이 주체의 지위를 부정하는데, 이 점은 텍스트 이론에서 ‘저자의 죽음’이란 주제로 변주되면서 매우 재미있는 성찰들을 낳기도 했다. 가령 데리다(Jacques Derrida)는 [그라마톨로지(De la grammatologie)]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직접적인’ 존재들의 현실적 삶이라고 부르는 것 속에는, 글밖에는 없다.” 우리는 현실적 삶과 그것을 영위하는 인격적 주체가 있고, 이 주체를 원천삼아 글이, 텍스트가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위 현실적 삶이 따로 있고, 이 삶을 원천으로 글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쓰인 글과 우리의 삶은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복사본인지 모른 채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가령 여러분은 자신이 얼마나 독창적으로 자신의 말과 글과 행위의 기원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의 지식은 또 다른 지식의 복제이며, 우리의 삶은 또 다른 삶의 모방물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주체라는 원천이 있고, 이로부터 텍스트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모방해서 이차적으로 탄생하는 것이 주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바로 이 점에 대해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서 이렇게 말한다. “영토는 더 이상 지도에 선행하거나, 지도가 소멸된 이후까지 존속하지 않는다. 이제는 지도가 영토에 선행하고 심지어 영토를 만들어 낸다.” 텍스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지도가 이른바 기원에 해당하는 영토에 앞서며, 심지어 그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주체가 텍스트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모방해서 주체의 삶이 생겨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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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뮬라크르
프랑스어로 시늉, 흉내, 모의(模擬) 등의 뜻을 지니는 시뮬라크르(simulacre)는, 가상, 거짓 그림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 시뮬라크룸(simulacrum)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라틴어 단어는 영어 안에도 그대로 흡수되어서 모조품, 가짜 물건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요컨대 시뮬라크르는 원본의 성격을 부여받지 못한 복제물을 뜻하는 개념이다.이 개념은 들뢰즈, 데리다 등의 철학자를 통해 현대 철학의 중요 개념으로 제시되었으며, 보드리야르 등의 사회학자를 통해 현대 사회의 특성을 담고 있는 개념으로 평가되었다.
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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