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는 신라시대에 화엄종의 정신적 기반을 마련하고 선양한다는 기치아래,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 세워진 가람이다.
법보종찰인 해인사는 불보사찰 통도사, 승보사찰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 삼대사찰의 하나로
한국화엄종의 근본 도량이자 우리 민족의 믿음의 총화인 팔만대장경을 모신 사찰이기도 하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의 본디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동양문화의 정수라고일컬어진다.
이 경전에 해인삼매 海印三昧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해인사 이름은 바로 이 '해인삼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역사시간에 공부했던 팔만대장경이 모셔져 있는 장경판전이 있는 사찰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한 해인사.
장경판전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경이나 그것을 인쇄하기 위한 목판을 보존하고 있는 전각을 말한다.
이제 그 법보종찰 해인사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해인사 입구.......망초꽃이 한창이다.. 안개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젬마님께서 시계풀꽃 목걸이도 만들어 주셨다...
덕분에 열심히 시계꽃풀 뜯어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화관을 만들었다...
보랏빛 싸리꽃도 지천에서 우리를 향해 웃어주고...
성철스님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도 아련히 보입니다...
비석옆 탑이 길상탑.......
보물1242호로 서기 약 900년경 건립된 것으로 높이 3미터,3층탑으로 전형적인 신라형 탑이라고 한다.
이 탑은 오랜 전쟁으로 굶주린 병사들을 위해 해인사 훈혁스님이 벼 한다발씩을 덜어
군량미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이 탑을 만들었다 한다. 그래서 이탑을 전몰병사와 호국안민을 위한 호국탑이라고도 한다.
해인사는 일주문에서 법보전에 이르기까지 계단이 많은데....그 숫자가 108계단이라고 한다
해인만다라길.....저 미로같은 길을 광명진언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를타야 훔" 을
외우며 걸으면 마음의 짐들을 풀어낼 수 있을까.....
비오기전 누군가 정갈하게 빗질해 놓은 길이 보인다....
처마밑으로 온몸을 던지는 빗방울의 투신.....아름다운 투신이다
해인사는 넓고....비는 내리고.....저렇게 오래 앉아 있는것으로도 마음이 정갈해질 것 같다
학사대아래서.....
학사대는 신라말기 문장가이자 학자였던 최치원이 만년에 가야산에 은거하면서 시서에 몰입하던 곳이라고한다
그가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면 학이 날아와 경청했다고 하며, 당시 거꾸로 꽃아 두었던 전나무지팡이가 지금까지 살아있다
가지가 아래로 쳐져 거꾸로 자라는 것 처럼 보인다
팔만대장경판이 있는 장경전에서 내려다본 풍경........장경전에서느 우산도 조심히 들어야 하고, 사진찍는것도 금지라 장경전 쪽 사진은 찍을 수 가 없었다
장경판전은 사진촬영이 불가인곳....촬영장소로 커다란 사진을 놓아둔 입구에서...
해인사를 나오며.......
여기서 또 해찰을 하느라 오솔길로 앞서간 일행을 놓치고 터덜터덜 주차장까지 ...
그래도 사람드문 비오는 길은 고즈녁해서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다
비가 알맞게 내려주어서 운치있는 길...산허리 안개도 너무 아름답다....
뜰채님이 찍어주신....덴무님이 쓰신화관......
저도 인증샷.....초로기님께서 찍어주셨습니다^-^
돌아오는 길...비가 멈춘 하늘가로 노을빛이 번져가고 있다^-^
해인사에서 뒤떨어져 가느라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러나 꼭 머리속에 지식을 담아가야만 제대로 한 여행은 아니라는 위안아닌 위안을 해보며
비내리는 장경전 하얀 시간을 품고 고요한 팔만대장경을 나무창 사이로 한동안 들여다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부처님께로 가는 길이 팔만개나 있다는 의미도 된다고 하셨던 어느분의 말씀을 되새겨 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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