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문학동네

초대시인수업 (2014. 2. 27/ 권현형시인)

이삐김밝은 2014. 3. 3. 19:29

 

분홍문장

 

            권현형

 

당신 눈이 깊어 레바논우물 같다

꽃뼈가 달그락거리는 소리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손가락을 뻗는다

 

 

다른 이의 무릎을 함부로 베고 누울 순 없다

 

 

밤새 격렬하게 비바람이 불었고

아침나절 강물의 얼굴이 궁금하다

조약돌 위에 이름 모를 짐승의 내장이

생의 군더더기 없는 형해(形骸)처럼 남아

 

 

꽃을 자루 째 털린 산벚나무가 하루 사이

폭삭 늙어 있다 다른 길이 없다

 

 

꽃은 인간을 닮아 있고

인간은 남의 가슴을 파고든다

간밤 어디론가 사라진

분홍 몸피의 다급한 문장이 궁금하다

 

 

어쩌라구 어쩌라구, 그런 말이었을까

끝에서라도 끝에서라도, 그런 말이었을까

 

-시집 『포옹의 방식』

 <약력>

。1966년 강원도 주문진 출생, 강릉대 영문과 졸업,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 석사,박사 수료

。1995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밥이나 먹자 꽃아』『중독성 슬픔』『포옹의 방식』

。제 2회 미네르바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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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같은 모습, 소녀같은 목소리의 시인이었다. 그러나 시인의 시 세계는 뜨겁고 강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