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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피리/문효치

이삐김밝은 2013. 6. 25. 19:16

 

피리/ 문효치

 

나는 대나무여요

외로운 악사의 피리가 되기 위해

거센 바람에도 부러지지 않고

수많은 칼질에도 베이지 않았어요.

 

푸른 하늘을 머금고 키워 온 몸뚱이는

외로움의 낫을 가는 미지의 악사,

그의 낫 날에나 잘리워질거예요.

 

그의 꼿꼿한 송곳으로 내 몸엔 구멍이 뚫리고

그 구멍으로 새로운 세상이 내다 보여요.

 

그의 낫질이 다듬는대로 이 몸이 다시 빚어지면

어느덧 나는 한 자루의 피리가 되어요.

 

그의 두 손이 더듬어 보듬으면

온 몸은 파르르 떨리는 성감대.

 

그의 입술이 와 닿으면

영혼 깊숙이 앓는 환희의 몸살.

 

뜨거운 입김이 몸 가득 퍼질 때

아, 나는 신음 같은 청을 돋궈 노래를 해요.

 

―시집『동백꽃 속으로 보이네』

출처 : 계간미네르바작가회
글쓴이 : 김기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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