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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취하다 / 박병란

이삐김밝은 2014. 3. 16. 14:22

 

 

 

 

 

 

 

  취하다

 

 

                                     - 박병란

 

 

 달빛 날개가 숨죽여 들어간 숲, 꽃잎 진다

 

 스미듯, 스미듯

 보름달이 여닫이문을 밀고 들어오던 숲

 

 누구에게나 있었을 한때처럼 처음이 주는 통증 같은 게 군데군데 자국을 남기고

 첫 입맞춤으로 다가왔던 그날의 간간한 밀착에 자지러지는 꽃잎도, 거기

 달처럼 둥글게 살림을 차릴 마음에 서두르다

 머뭇머뭇 떨어지는 꽃이 되어준 그대라는 시작이 있었다네

 

 알고 지낸 모든 '첫' 을 기념하자고 모여든 첫날밤의 갈채 소리였을까

 

 밤새도록 뒤엉킨 '첫' 경험들이 천지간에 거짓말, 거짓말 하며

 두둥실 떠 오르더라도 눈감아주자 이렇게 질끈

 

 모든 '첫' 이 끝나 버리면 한동안 소원해지는 저녁의 이름들처럼

 

 기억하자면 그렇다는거지

 이명을 앓는 것처럼 자글거리는 뭇 꽃의 개화였다 한들

 한 번뿐인 '첫' 을 힘껏 취하지는 못하였을 터

 

 달이 찬 밤, 길을 잃은 꽃잎 두 개 숲속에서 비명을 지르네

 모든 '첫'은 쓰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발견』2013년 겨울호

 

 

 

  - 2011년<발견>으로 등단. 시집<사랑, 맹목적인>

 

 

 

출처 : 폴래폴래
글쓴이 : 폴래폴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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